[미국 경제 대공황] 번영의 절정에서 몰락까지: 세계를 뒤흔든 2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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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대공황] 번영의 절정에서 몰락까지: 세계를 뒤흔든 20년의 기록

장돌뱅뱅 202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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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경제 대공황] 번영의 절정에서 몰락까지

1910년대,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민족과 국가 간 긴장이 폭발하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약 4년간 천만 명 이상의 목숨이 희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미국은 반사이익을 누렸습니다. 군수물자, 석유, 식량을 대량 수출하며 산업 강국으로 도약했고, 국토 피해가 없었던 덕분에 전후 복구 부담 없이 세계 경제의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광란의 1920년대: 미국의 황금기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광란의 20년대'라 불리는 전례 없는 번영기를 맞이합니다.

  • 헨리 포드의 대량 생산 시스템 도입
  •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 성장
  • 석유, 강철, 고무, 유리 산업의 동반 성장

중산층이 확산되고 여가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영화, 스포츠, 재즈 음악 등 대중문화도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찰리 채플린, 베이브 루스, 루이 암스트롱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죠.

하지만 급격한 번영 이면에는 주류 금지법으로 인한 범죄 증가, 윤리적 타락 같은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웠습니다.


주식 시장의 열풍과 붕괴

경제 호황에 취한 사람들은 앞다퉈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무리한 대출과 투기 열풍 속에서 주가는 끝없이 치솟았고, "주가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환상이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주식 시장은 대폭락합니다. 이어진 '검은 화요일'에는 하루 만에 정부 예산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 증발하며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공황의 진짜 원인: 과잉 생산과 자유방임주의

대공황은 단순한 주가 하락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 기업들의 과잉 생산과 과잉 설비
  • 소비자 구매력 한계 초과
  • 재고 과잉, 기업과 은행의 연쇄 파산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한 정부는 시장 개입을 최소화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대공황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독일의 몰락과 히틀러의 부상

특히 독일은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습니다. 전쟁 배상금에 허덕이며 간신히 회복하던 독일 경제는 다시 무너졌고,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는 극단적 민족주의로 분출되었습니다. 그 결과, 히틀러와 나치당이 등장하게 됩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명언과 함께 '뉴딜 정책'을 선언합니다.

  • 테네시 계곡 개발 사업(TVA) 추진
  • 긴급 은행법 제정
  • 증권거래위원회(SEC) 설립

정부는 공공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금융 시장을 규제하며 경제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뉴딜 정책은 막대한 재정적자를 남겼고, 1937년에는 '루스벨트 불황'이라는 또 다른 경기 침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재도약

결국 미국 경제를 본격적으로 부활시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 전쟁 물자 생산으로 실업률 급감
  • 여성과 소수 인종의 노동시장 대거 진입
  •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과 대규모 소비 확대

이로써 미국은 다시 세계 초강대국의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됩니다.


대공황이 남긴 교훈

대공황은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세계사의 방향을 뒤바꾼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과잉 생산, 자유방임주의의 실패, 부의 불균형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였고, 이후 경제 시스템의 안정성과 정부 개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습니다.

"위기는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한 기회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 재편과 냉전 시대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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